한국 사람들처럼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처럼 영어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도 드물다. 나 역시도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했고 또 공부하고 있지만, 자신감은 부족한 편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또는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영어'를 실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학문으로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 영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회화 위주의 영어 학습 방법이 도입되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30대 이상의 세대들에게 여전히 영어는 생활의 도구가 아니라 학문의 대상이다. 그래서 학문의 대상인 영어를 배운 30대 이상들은 읽기나 문법에는 굉장히 강점을 보이고, 때로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어휘나 문법을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표현이나 문법을 알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이 떠듬떠듬 말을 하는 것을 외국인들은 신기해한다.
오랫동안 영어를 학문으로 배워온 세대로서 내가 영어에 대해 품어왔던 오랜 의문은 왜 영어 알파벳 'Y'가 자음으로 분류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영어 단어 속에서 알파벳 'Y'는 모음 'I'처럼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단어 'Boy'에서 알파벳 'y'는 'i' 발음으로 읽히고,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렇다.
물론 알파벳 'Y'가 단어 앞에 위치하는 경우 자음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young의 경우 발음기호가 [jʌɳ]이라고 읽혀 얼핏 보면 y가 자음처럼 쓰이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발음기호 [j]는 우리 모음을 빌리자면 ‘ㅣㅡ’를 빨리 읽은 발음이다. 그래서 보통 자음으로 쓰이는 y의 경우도 다른 모음과 합쳐져 모음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로마 알파벳 y의 딜레마는 한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의 자음 ‘ㅇ’도 초성에 쓰일 때는 음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유럽인들과는 달리 음가가 없는 ‘ㅇ’의 문제에 대해 훨씬 현명하게 대처했다. 글자는 항상 초성이 꼭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초성의 음가가 없는 글자에는 ‘ㅇ’을 붙이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게다가 종성에 오는 ‘ㅇ’은 엄연히 음가를 갖게 함으로써 자음 ‘ㅇ’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500년 전에 영국인들이 과학적인 ‘한글’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그들 역시 ‘y’를 ‘~ng' 대신 사용함으로써 자음으로서의 ’y'의 위상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유럽 나라들마다 제 각각인 알파벳 사용법 때문에 ‘y'를 자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생겨났다. 독일어의 경우 ’j'가 영어 알파벳 자음 ‘y'처럼 사용되고, 불어 계통에서는 많은 경우 ’h'가 묵음이기 때문에 자음의 역할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영어 ‘r'의 경우에도 단어 끝에 모음 다음으로 오는 ’r'은 모음인지 자음인지 불명확하다.
결국 각 나라마다 자음과 모음이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다 보니, 결국 공통적으로 모음일 수밖에 없는 ‘a, e, i, o, u’ 만을 모음으로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포르투갈어의 경우 모음 ‘o'를 한글의 자음‘o’처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빵’이라는 단어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포르투갈 어인데, ‘빵’의 포르투갈어 표기법이 ‘Pao’이다. 'a' 다음에 오는 'o'를 우리의 ‘이응’처럼 읽는 것인데, 혹시 일찍부터 우리 앞 바다를 오가던 중세 포르투갈 인들이 한글의 존재를 알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실 로만 알파벳 계통의 언어들은 자음과 모음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대부분의 언어들이 그렇기도 하다. 자음은 영어로 ‘Consonant’라고 하는데, ‘함께 소리가 난다’는 의미이다. 모음은 영어로 ‘Vowel’이라고 하고, ‘소리가 난다’는 의미이다. 결국 소리의 중심은 모음이고 자음은 소리의 다양성을 형상화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언어적 원리를 체계화 시켰지만 정작 자신들의 언어에서 자음과 모음을 체계에 맞게 정립시킬 수는 없었다. 로만 알파벳에 뿌리를 둔 한계 때문이었다. 반면 우리의 조상들은 한글을 만들 때 자음, 모음의 개념을 체계화 시키지는 않았지만, 자음과 모음의 본질을 관념적으로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과학적인 알파벳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 20세기의 선구적인 우리 한글 학자들이 현대적 과학성을 더욱 구체화 시켜 우리들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쓰는 민족이 되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우리의 모음 ‘ㅡ’를 많은 언어들에서는 모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언어들은 ‘ㅡ’ 소리가 자음이 사라지면서 생겨나는 여운이라 여겼다. 그래서 한글 모음 ‘ㅡ’는 로마 알파벳으로 표기하기가 가장 애매한 모음이 되었고, 다른 언어들에는 존재하지 않는 모음이다보니 ‘eu’로 쓰는 정도로 타협을 했다. 하지만 한글에서 ‘ㅡ’ 모음은 소리가 사라지는 여운이 아니라 엄연한 유성음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ㅡ’와 한국인들의 ‘ㅡ’는 다르다. 영어 'Cream'을 발음한다고 할 때, 그들은 ‘ㅋ림’이라고 발음하며 이것은 우리가 한글 ‘크림’을 읽을 때와 전혀 다르게 소리가 난다. 그래서 영어에서 크림은 1음절이고, 우리의 크림은 2음절이다. 모든 소리문자는 모음을 갖는 다는 것은 한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들의 약속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Mcdonald(맥도날드)’의 Mc에는 모음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로 원래 'Mac'이라고 쓰던 것을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